2003년의 찻자리, 2005년의 항아리
기록사진으로 읽는 답십리 고미술상가의 또 다른 생활사
답십리 고미술상가의 옛 사진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사진의 촬영 날짜와 설명·출처부터 확인하세요. 2003년 찻자리와 2005년 항아리 진열은 당시 상가의 생활 기록이며, 물건의 제작 연대나 현재 점포·재고·체험 운영을 증명하는 자료는 아닙니다.
- 촬영 날짜·자료 설명·출처를 읽고 물건의 제작 연대와 구분하기
- 과거 체험과 진열 사진을 현재 운영·판매 재고의 안내로 쓰지 않기

2026.10.19 · 고미술 이야기
오래된 물건을 파는 상가에도 그 상가 자신의 옛 모습이 있다. 그릇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와는 별개로, 누가 어떤 자리에서 물건을 보고 사용했는지를 남긴 기록이다. 답십리 고미술상가를 소개하는 사진도 촬영 날짜를 확인하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오늘 찾아갈 점포의 안내 사진이 아니라, 한 시기의 상가 풍경을 전하는 자료가 되는 것이다.
동대문구가 운영하는 ‘동대문구 기억여행’에는 답십리 고미술상가의 기록사진이 묶여 있다. 개별 자료에는 날짜와 설명, 출처가 붙어 있다. 2003년의 다도 체험, 2005년의 항아리 진열, 2013년의 장과 함. 물건의 제작 연대가 아닌, 상가에서 그 물건을 만났던 시기의 기록이다.[5]
가장 먼저 볼 것은 사진 아래의 날짜
‘답십리 고미술상가 풍경 (6)’의 기록 날짜는 2003년 8월 5일이다. 자료 설명은 한 여성이 상가의 다기로 다도를 체험하는 장면이라고 적고 있다. 출처와 제작자는 동대문구청 홍보관으로 표시돼 있다.[1]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특정 시점에 다기를 사용하는 체험 장면이 기록됐다는 사실이다. 누가 체험을 마련했는지, 정기 프로그램이었는지까지는 이 자료만으로 알 수 없다. 지금 방문해도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고 소개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이 기록은 상가를 보는 시선을 조금 넓혀준다. 다기는 선반에 놓인 그릇이면서, 차를 따르고 마시는 행위에 쓰이는 도구다. 사진의 설명을 따라가면 물건의 이름 다음에 사용 방식이 놓인다. 도자기의 빛깔과 무늬를 감상하는 것에서 한 걸음 옮겨, 어떤 동작과 자리에 쓰였는지를 묻게 된다.
항아리와 장이 함께 남긴 상가의 풍경
2005년 8월 17일로 기록된 ‘풍경 (1)’은 고가구 상가에 쌓여 있는 항아리들을 소개한다. 고가구 상가라는 설명과 항아리라는 물건이 한 기록 안에 들어 있다. 이를 계기로 옛 사진에서 살펴볼 것은 개별 물건뿐 아니라 서로 다른 품목이 한 점포 안에서 어떻게 함께 놓였는가 하는 점이다.[2]
다만 사진 속 항아리가 어느 지역에서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담던 것인지, 당시 얼마에 팔렸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진열된 모습만으로 유물의 이력을 채워 넣을 수는 없다. 상가를 기록한 사진과 개별 물건의 감정 자료는 역할이 다르다.
2013년 7월 19일의 ‘풍경 (5)’에는 여러 크기의 장과 함이 담겼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옛 가구를 볼 때 높이와 폭을 비교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사진에는 거리와 각도에 따른 차이가 생긴다. 옆 물건을 기준 삼아 대략적인 규모를 짐작할 수는 있어도 실제 치수 대신 사용할 수는 없다.[3]
이런 한계를 알고 보면 사진이 더 유용해진다. 크기와 가격의 정답을 찾는 자료가 아니라, 다음에 현장에서 무엇을 확인할지 정하는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상가의 역사와 물건의 역사는 나누어 읽는다
답십리에 오래된 물건이 많다고 해서 상가 자체가 그 물건만큼 오래된 것은 아니다. 동대문구 문화관광 안내는 상가가 1980년대 초부터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구의 ‘기억여행’은 1980년대 중반 황학동과 이태원·아현동 등 여러 지역의 점포가 모여든 과정을 전한다. 자료마다 시작 시점을 서술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여러 곳의 상점이 이전하며 상권이 형성됐다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4][5]
따라서 조선시대 가구의 제작 시기, 답십리에서 거래된 시기, 사진으로 남은 시기는 각각 다른 시간이다. 사진에 2005년이라는 날짜가 붙어 있다고 항아리가 그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오래된 가구가 보인다고 그 점포가 수백 년 이어졌다는 뜻도 아니다.
고미술상가의 문화는 물건의 오래됨에만 있지 않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물건을 한자리에서 비교하고, 이름과 쓰임을 확인하며, 새로운 소장자를 만나는 과정도 그 문화의 일부로 읽을 수 있다. 기록사진은 그 과정의 한 순간을 붙잡아둔다.
최근 사진도 ‘오늘의 현장’은 아니다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에는 2026년 7월 22일 발행된 답십리 고미술상가 방문 기사가 있다. 시민기자 이명은이 작성한 이 기사에는 2동 내부와 5동 복도, 소반과 문방구 등 여러 품목의 사진이 실려 있다. 앞선 공공 기록과 함께 찾아볼 수 있는 비교 자료다.[6]
그러나 시기가 다른 사진 몇 장만으로 상가 전체의 흥망이나 업종 변화를 단정할 수는 없다. 촬영한 점포와 위치가 다르고, 사진가가 골라 담은 대상도 다르다. 어떤 사진에 다기가 없다고 그때 다기를 팔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최근 기사에 소개된 공간과 진열품도 발행 당시의 기록으로 읽어야 한다. 지금의 점포 구성이나 재고를 확인한 자료로 대신할 수는 없다. 방문할 곳이 정해졌다면 현재 주소와 영업 여부를 별도로 확인한다.
사진 한 장에서 질문 하나만 가져가기
상가를 찾기 전 기록사진을 모두 외울 필요는 없다. 관심 있는 한 장을 고르고 궁금한 점을 하나만 적어보자. 항아리 사진이라면 이름과 쓰임, 장과 함의 사진이라면 문을 여는 방식과 크기, 다도 체험 사진이라면 차를 마실 때 각 그릇이 맡는 역할을 질문으로 삼을 수 있다.
현장에서는 사진 속 물건과 같은 것을 찾기보다 비슷한 유형을 비교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판매자가 설명해준 내용과 자신이 사진에서 짐작한 것은 나누어 기록한다. 물건을 촬영하거나 설명을 웹에 옮길 때는 점포와 소유자에게 게시 범위를 확인한다.
답십리의 기록사진을 다시 보는 일은 과거와 똑같은 풍경을 찾는 일이 아니다. 한때의 찻자리와 진열된 그릇, 크고 작은 수납 가구를 통해 상가에서 물건을 만나던 방식을 살펴보는 일이다. 다음 방문 때 사진 한 장이 질문 하나로 이어진다면, 그 기록은 지금도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