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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의 역사

고미술상가는 왜 답십리에 모였을까?

황학동 만물시장에서 고미술로까지, 흩어진 가게들이 서울 동쪽에 새 거리를 만든 과정

답십리 고미술상가는 어떻게 형성됐나요?

청계천·황학동·아현동·이태원 등지의 상점들이 옮겨오며 형성된 집적지입니다. 한 지붕 아래의 계획 시장보다 여러 건물에 걸친 상권으로, 자료마다 형성 시점의 설명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 황학동 만물시장과 다른 지역 상점의 이동 기록을 함께 읽기
  • 한 건물로 생각하지 않고 방문할 상가의 동과 위치 확인하기
본문과 근거 읽기
나무 선반에 옛 교과서와 생활용품이 진열된 시장 풍경
오래된 교과서와 생활용품이 놓인 서울풍물시장 · 2013년사진 출처: Korea.net / 해외문화홍보원 · 전한 · CC BY-SA 2.0서울풍물시장 관련 참고 사진입니다. 답십리 상가의 현재 모습은 아닙니다. 원본 사진을 사용했으며 카드에서는 화면 비율에 맞게 일부가 보입니다.

답십리 고미술상가를 처음 찾으면 한 건물 안에 반듯하게 정리된 시장을 예상하기 쉽다. 실제 모습은 조금 다르다. ‘2동’, ‘5동’, ‘6동’처럼 번호가 붙은 건물과 장한평 방향의 상가가 거리를 따라 흩어져 있다. 고가구와 도자기, 고서화, 석물이 한 지붕 아래 모였다기보다 동네 여러 건물에 걸쳐 이어진다.

이 배치는 상가의 역사를 닮았다. 답십리 고미술상가는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들어선 계획 시장이 아니었다. 청계천과 황학동, 아현동, 이태원 등 서울 곳곳에서 물건을 다루던 상점들이 차례로 옮겨오며 만들어진 집적지다. 오래된 물건만 모인 곳이 아니라, 서울의 오래된 시장이 이동한 흔적까지 남아 있는 셈이다.

출발점 가운데 하나는 황학동 만물시장이었다

서울역사아카이브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황학동 만물시장’을 청계천 7가와 8가 사이, 영도교 남쪽 일대로 설명한다. 20세기 후반 이곳에는 사람보다 많은 중고품이 겹겹이 쌓였다고 기록한다. 지금도 시장의 명맥은 남아 있지만 청계천 주변부의 시장 영역과 점포 수는 과거보다 줄었다.

황학동은 고미술품만 파는 시장은 아니었다. 쓰던 물건과 고쳐 쓸 물건, 부품과 공구, 생활용품이 뒤섞인 만물시장이었다. 그 안에서 오래된 가구와 도자기, 그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가게도 자리를 잡았다. 물건의 쓰임을 알아보고 수리 가능성을 판단하며 새 주인을 연결하는 경험도 이곳에 쌓였다.

동대문구의 지역기록 플랫폼 ‘기억여행’은 답십리 고미술상가의 전사를 1970년대까지 거슬러 설명한다. 1970년대 활기를 띠었던 청계천 주변 황학동 시장이 1980년대 중반부터 답십리 쪽으로 집단 이동했고, 이태원과 아현동 등에 흩어져 있던 고서화·고가구·도자기 상점들이 뒤따라 모이며 상권의 기반이 만들어졌다는 기록이다.

동대문구 문화관광 안내는 답십리 고미술상가가 1980년대 초부터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자료마다 ‘1980년대 초’와 ‘1980년대 중반’처럼 시점이 조금씩 다르다. 어느 한 해에 일제히 문을 연 시장이라기보다 여러 해에 걸쳐 상권이 형성됐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물건뿐 아니라 거래의 경험도 함께 옮겨왔다

상점의 이동은 진열된 물건의 주소만 바꾼 일이 아니었다. 무엇이 어디에서 쓰였는지 설명하는 지식, 손상된 가구와 그림을 수리하는 기술, 수집가와 물건을 잇는 거래망도 함께 움직였다. 답십리가 생활사 자료와 미술품, 국내외 골동품이 뒤섞인 시장이 된 배경에는 이런 축적이 있다.

동대문구 문화관광 페이지는 답십리와 장한평 사이의 고미술 상권을 서부와 동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답십리역을 중심으로 고미술길과 황물길 사이에 자리한 곳이 서부 상가, 장한평역 인근 천호대로변이 동부 상가다.

같은 페이지에는 140여 개 전문 상점과 약 25만 점의 고미술품이 있다고 안내돼 있다. 다만 이는 실시간 재고 조사 결과가 아니라 구청 관광 안내에 기재된 현황 수치다. 방문 시점의 실제 점포와 물품 수는 달라질 수 있다.

취급 범위가 넓어진 것도 이런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답십리에서는 고서화나 도자기처럼 흔히 ‘고미술’로 분류하는 물건뿐 아니라 놋그릇, 함지, 떡살, 문틀, 수레바퀴, 촛대, 화로, 괘종시계 같은 생활 도구도 볼 수 있다. 티베트·인도·중국·일본·베트남 등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 들어온 물건도 소개돼 있다.

따라서 답십리의 진열을 하나의 시대나 장르로 묶어 이해하기는 어렵다. 물건마다 출처와 제작 지역, 시기를 따로 물어야 한다. 한국의 오래된 물건처럼 보여도 외국 골동품이거나 근래에 만든 재현품일 수 있다. 상가의 다양성은 장점이지만 ‘이곳에 있으니 모두 한국 고미술품일 것’이라는 짐작은 경계해야 한다.

여러 동으로 나뉜 모습도 상가의 역사다

상가가 여러 동과 건물에 나뉜 모습은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 다소 복잡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구조는 상권이 단번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점포들이 모이고 확장되면서 형성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대문구청 홍보관이 2005년 촬영한 사진에는 고가구 상점 안에 항아리들이 층층이 놓여 있다. 2010년 기록에는 상가 입구를 따라 석상들이 줄지어 선 모습이 남아 있다. 지금의 방문자는 이 사진을 통해 20여 년 전에도 대형 가구와 석물, 도자기가 건물 안팎을 채우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대문구 기억여행은 이 거리가 2009년 동대문구 특화거리로 지정됐다고 기록한다. 시장의 역사가 행정적인 ‘거리’의 이름을 얻은 시점이다. 다만 특화거리 지정이 상권을 새로 만든 것은 아니다. 이미 이어져 온 상점과 물건의 흐름을 지역 문화자원으로 다시 부른 것에 가깝다.

상가를 걸을 때는 모든 점포를 한 번에 보려 하기보다 한 가지 품목을 정하는 편이 좋다. 첫 건물에서는 도자기, 다음 건물에서는 목가구처럼 비교하면 점포마다 전문 분야와 진열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이 보인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도 바로 연대나 진위를 단정하지 말자. 판매자가 제시하는 명칭과 제작 지역, 수리 이력, 입수 경위를 기록해 두는 것이 좋다. 같은 종류의 물건을 몇 점 더 본 뒤 질문이 구체적으로 바뀌는 순간부터 시장 구경도 달라진다.

답십리를 이해하면 ‘골동품’의 범위가 넓어진다

박물관에서는 물건이 시대와 재질, 용도에 따라 분류된다. 시장에서는 분류되기 전의 모습과 더 자주 마주친다. 제사에 쓰던 그릇 옆에 근대의 시계가 있고, 오래된 문짝 옆에 해외에서 들어온 조각상이 놓인다. 학술적으로 중요한 유물과 생활 속에서 쓰다 남은 물건, 현대 재현품이 같은 시야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 혼재는 답십리의 약점이라기보다 이곳을 제대로 보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오래됐다고 믿는 태도가 아니라 물건마다 다른 시간과 이동 경로를 구분해 보는 일이다.

답십리 고미술상가의 역사 역시 한곳에서 시작된 단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청계천과 황학동, 아현동, 이태원에서 이어진 여러 갈래의 장사가 서울 동쪽에서 다시 만난 결과다.

다음에 상가를 찾는다면 물건만 보지 말고 건물 사이의 거리도 함께 걸어 보자. 왜 상점들이 한 건물에 다 들어가지 않았는지, 왜 도로 이름에 ‘고미술’이 남았는지 생각해 보면 답십리는 거대한 판매장보다 이동해 온 시장에 가깝게 읽힌다. 오래된 물건이 새 주인을 만나는 곳인 동시에 서울의 상업 지도가 옮겨 다닌 과정을 보여주는 거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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